가을 편지

이재섭 0 10035

인연은 연기 (緣起)로 이해 하는 것도 납득치 못할 부분이 많다.
처음 만나서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투박한 옹기같이 두고 두고
그 맛이 우러나는 사람이 있다.

언변이 화려하고 자기를 쉽게 드러 내는 이는 천박으로 흐르기 쉽고..
우매하여  말의 경중이 가려지지 않는 이는 큰 일을 도모하지 못한다..
나는 늘 부족하여 명민치 못한 팔삭 같지만  지근에 좋은 벗들이 있는 것으로
그 축복을 삼는다..

지란지교와 관포의 의를 본받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의 상정이지 않겠는가만
사람과 사람의 일이란 유리 같아 그 상처가 쉽고. 그 사유의 바닥이 꾀쩨쩨하고
그 생각이 비루하면  사뭇 마음 가는 길이 예전치 못함은 근기가 약한 나만의
일은 아니리..근세에 청류의 지교를 추사와 초의  선사의 우정에서 본다.

초의 선사에게서 햇 차를 기다렸지만 초의가 차를 보내주지 않자
완당이 초의 선사에게 보낸  그 유명한 편지 한편은 다음과 같다.

....편지를 보냈지만  한번도 답을 받아 보지 못하니 아마도
산중에는 반드시 바쁜 일이 없는 줄 상상되는데 혹시나
 세체와 어울리고 싶지 않아서 나처럼 간절한 처지인데도
 먼저 금강을 내려 주는 건가...나는 스님을 보고 싶지 않고
또한 스님의 편지도 보고 싶지 않으나 다만 차의 인연 만은
차마 끓어 버리지 못하고 쉽사리 부수어 버리지도 못하여
또 차를 재촉하오니 편지를 보낼 필요도 없고
 다만 두해의 쌓인 빚을 한꺼번에 챙겨 보내되
 다시 지체하거나 빗나감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을 거요....(완당평전  )
 
추사는 초의 선사에게 차를 보내 달라고 다시  협박조의 편지를 쓴다.
유배지에서 오로지 차를 벗 삼아 그 위리안치를 견디던 노학자에게
차는 정신을 기르는 대기 대용의  방편이었는데.
무슨 연유인지 초의는 추사의 애를 태우면서 차를 보내 주지 않는다  완당의  2신...

세밑의 추위는 벼룻물을 얼게 하고 다순 술도 얼릴만 하나
스님이 계신 남방에는 들판에서도 이런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더구나 초암에서 이런 추위를 이해하겟소..이 몸은 변함 없이
강상에 있으니 설을 지내고 봄이 오면 다시 호남에 갈
신과 지팡이를 매만 질 듯 하오..
새 차는 어찌하여 돌샘 솔바람 사이에 혼자 마시며 도무지
먼 사람생각은 하지 않는 건가 몽둥이 서른대를 아프게 맞아야 하겠군, 하하하.
새 책력을 부쳐보내니 대밭 속에서도
일월이나 알고 지내시오,,..(제 2신.. 완당평전 ,,)

이번에는 아예 완당이 봄이 오면 초의를 찿아 가겠다 말한다
이런 간청을 못 이겼는지 초의는 결국  완당을 만나러 왔다
그리고 완당이 못가게 붙드는 바람에 무려 2년동안
 완당 곁에서 벗해 주며 같이 지낸다..

완당이 초의 선사와 작별 할 때 추사는 다반 향초라는 글을 써주어
불후의 명필로 석별의 정을 담는다

...고요히 앉아 있는 것은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

추사의 초의에 대한 마음을 담은 글이다.
한 닢의 난을 치듯 담백한 마음의 교류를 흠모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기쁜 선물을 받는다..
겸재 정선의 평전과 그의 작품집이다.
출간 소식은 들었으나 쉽게 구할 수 없었던 간송 미술관
최완수의 역작이다.
강 재이 사장님으로 부터 받은 한 질의 책은
 나의 정신을 쇄락하게 한다.
나는 문재는 없지만 일찍이 많은 책을 읽기를 즐겨 하였다.
또한 그  그 문자향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가을 창가에 부서지는 햇살에 비추어 읽는 진한 서권기를
어찌 초의의 햇 차에 비길것인가?
오동나무의 넓은 입맥이 푸르르다.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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