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대 [1]
컨텐츠 정보
- 19,784 조회
- 목록
본문
안녕하세요.
산행기를 올리기에 앞서 회원가입인사 드립니다.
저는 이 재섭님의 소개로 이 곳을 찾게 된, 산과 사진을 좋아하는, 카메라 없는 전업주부입니다.
지난주에 있은 이재섭님과 산악선배님들과의 산행이야기를 올리는 것으로 가입신고식을 하옵니다.^^
제목 : 소년시대
2009.7.4.토. 안개 - 뭉게구름 - 쏘나기.
코스 : 화엄사 - 우번암 - 상선암 - 천은사
소년들 : 시님, 치자꽃, 월산, 씰데없는 난로, 키서방, 똘이장군
아, 닉이 낯설다구요...
ㅎㅎ~ 소년들이 별명짓기를 좋아하시더군요.
퀴즈 : 뭐하고 있는 중일까요?
진지한 표정이 경건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데요.
정답 ; 구례군 토지면 중앙식육식당에서 고기 2만원어치 구입하면서
식당의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를 목욕재계 시키는 중입니다.
상추씻은 사람 : 치자꽃, 키서방, 씰데없는 난로, 똘이장군.
안 씻고 논 사람 : 유키.
상추 목욕재계할 때 변소 간 사람 : 월산, 시님.
산행 들머리 묘지 옆에 호박꽃이 피었네요.
잎사귀 몇 장 따서 앞서가는 소년의 배낭헤드에 집어넣는 치자꽃 소년을 보고 드는 생각은
치자꽃 소년 뒤에 서야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섰다가는 배낭 주머니에 몰래 두꺼비를 집어넣을 지도 모르니까요.
힘차게 내딛는 소년들이 뿜어내는 수증기로 오솔길이 자욱합니다.
나는 내 숨소리가 너무나 커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아무 소리도 내뱉을 수가 없어서
이 무거운 몸을 안개에 좀 녹여볼까 어째볼까 싶은데 오솔길을 치고 오르는 소년들은
마치 우아한 찻집에서 편안히 앉아 향긋한 차를 음미하듯 담소를 나누며 갑니다.
땀을 한 바가지 흘렸으니 수박을 먹고 가지요.
소년들을 따라 숲이 웃지요. 아닌가.. 아, 숲을 따라 소년들이 웃지요.
꼼짝마!!
T자 갈림길에서 치자꽃 소년이 숲 너머에 숨었다가 갑자기 총구를 들이대서 깜짝 놀랍니다.
이럴땐 으악, 사사살려주세요... 이래야 하는건데.
저어, 한 번만 더 포즈 취해주시겄습니꺼?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종석대를 딛을 것이요.
마, 좌측으로 갑니다.
어디 좀 볼까...
아이, 왜 이러세요.
우번암에 닿았습니다. 주머니가 있으면 뒤져보고 뚜껑이 있으면 열어보고 비치면 들여다 보고
길이 안 보이면 찾아보고.... 똘이장군은 여느 소년들보다도 두배 더 많이 움직입니다.
더덕 넝쿨 사이로 똘이장군.
치자꽃 소년이 art에 열중합니다.
자, 키순으로... 자 오른쪽으로 좀 더 땡기고... 거, 너덜한 수건 좀 숭카라.
월산 소년이 목에 걸었던 수건을 퍼뜩 뒤로 숨깁니다.
치자꽃 소년은 틈만 나면 해병대 시절의 전설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 소년의 나이가... 나이는 그냥 숫자죠.)
그러면 씰데없는 난로소년이 갑자기 산행대장으로 둔갑을 해서는
출발!! 외치며 맥을 끊어 놓기 일쑵니다.
소싯적에 소녀들의(가시내들의) 고무줄 놀이에서 고무줄 좀 끊어 본 솜씬데요.
'오늘 산행대장 누꼬? '
일이 여의치않게 꼬여서 소년들의 질책성 멘트에 몰리면 갑자기 또 산행대장을 '시님'께로 떠넘기기가 거행됩니다.
art의 대상으로 임하는 똘이장군.
나는 일찌기 이다지도 똘방한 이미지의 소년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얘야 산딸기가 먹고 싶구나아"
15세기, 엄동설한에 병환이 깊으신 모친을 위해 산딸기를 구해다 드리고야 말 것같은 다부짐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우번암의 갯버들입니다.
산에 갯버들이 있는 곳은 꼭 산불이 난다 고하는 속설이 있다고 하네요.
누가 '씰데없는 난로'라고 했을까요.
샘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씰데없는 난로 소년의 물공양이 있습니다.
한바가지 떠서 꼭 돌려가며 먹지요.
난로소년이 돌리는 바가지의 물만 마시면 다들 까르르 웃다가 뒤집어지는 현상이 생깁니다. 참 신기한 물바가지지요.
스님의 말씀에 다들 경청하는데 한 사람, '뭔 뜻인지 도통 알길이...'
어먼 귀만 만지고 있습니다.
스님을 얼추 십여년 만에 다시 만나는 소년들이 있네요.
그러면 대략 이 소년들의 나이가...
우번암을 지나 시야가 트이는 한 뼘 공터에 섭니다.
수증기가 잦아들어서 소년들이 타고 오른 차일봉 능선(사진 아래)과 종석대(사진 위)가 보이는군요.
수건이 art스럽지 않다고 외면 받았지만 산 속의 싸리꽃과 함께라면
이렇게도 멋스러울 수가 있군요. 은은한 보라빛 셔츠와도 절묘
하게 어우러집니다.
씰데없는 난로 소년의, 온 몸으로 체험한 살아있는 지리산 강의가 한창인데 다들 각자 일에 몰두하느라 여념없어 보입니다.
'음, 사진이 별로야...'
'차암나.. 이 수건이 어때서...'
'시방 시간이...'
이뿌게 찍혀야 할텐데...
내 이뿌게 찍어 줄게...
음, 이뿌다 이뿌.
저 달 속에 님이 있고.... ♪
호박잎사귀를 넣은 갈치찌개로 점심을 먹어서 배도 부르고 기분이 좋습니다.
월산소년의 주제가를 한바탕 부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