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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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눈망울
15:53분 우리가 탄 버스는 포카라로 달렸다. 가이드 라나가 마이크를 잡고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트레킹을 완료해서 축하드리고 기쁜 마음이라고 했다

그럴 것이다. 만일 트레킹 도중 누구 하나라도 다쳐서 걷지 못하는 사고라도 생겼다면 우리 모두가 얼마나 난감했을까 싶다. 모두들 어렵고 힘든 일을 마친 후의 

뿌듯한 얼굴들이다. 당연하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다.

버스가 웬만한 앞차를 모두 추월하며 달리는데 하굣길의 여학생 셋이 보인다. 중학생 같다. 짙은 청색 재킷과 주름스커트, 하늘색 셔츠와 빨간 넥타이에 머리는 

양 갈래로 붉은 끈으로 묶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는지 아이들은 웃음꽃이 피었다. 순간, 시누와에서 촘롱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에 자기 몸의 세 배나 되는 

짐을 지고 올라가던 어린 소녀가 생각났다. 평생 그 삶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소녀, 그리고 교복을 단정히 입고 친구들과 학교에 다니는 

이 여학생들-
촘롱에서 만난 소녀의 까만 눈망울에서 난 슬픔조차 느낄 수 없었다. 배고픈 세월을 오랫동안 겪어온 나의 지난 날 그때와는 또 다르다. 그 소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아프고 무겁게 했다.

쇼핑
17:37, 어둑해서야 포카라의 쇼핑 거리에 버스가 섰고 한 시간 동안 쇼핑을 할 시간이 주어졌다. 뭘 사고 싶은 마음도 살 것도 없어 버스에 그대로 앉아있는데 

이미향 씨가 그러지 말고 바람 쏘이며 구경이라도 하러 나가자고 한다. 카메라만 들고 내려 둘이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살 게 없었는데도 내년도 안나푸르나 

예쁜 달력을 보니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도 하나를 사고 이미향 씨도 달력과 작은 손지갑을 하나 샀는데 쇼핑거리 끝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미향 씨가 

여행용 가방을 하나 보더니 사고 싶다고 하길래 흥정을 내가 맡았다. 달력이야 불과 몇 달러지만 가방은 액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첫 가게에선 64달러를 불렀다

깎아달라고 했더니 50달러, 더 깎자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하더니 45 달러, 그래도 비싸니 더 깎아야겠다고 했더니 도대체 얼마를 내려고 하느냐며 계산기를 

내민다. 거기에 ‘20’를 넣었더니 펄쩍 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긴, 64달러 달라는 걸 20달러만 주겠다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그게 무리가 

아니라는 걸 난 알고 있어서 안 되면 안사겠다고 나가려니까 30달러만 내라고 한다. 대번에 15달러가 또 깎인 것이다. 이미향 씨는 그 정도면 샀으면 싶은 

눈치인데 내 육감으로는 20달러면 충분히 살 수 있는 것이다. 난 손가락 두 개를 보이며 20달러가 아니면 안사겠다고 하고는 바로 옆집에 들어가서 같은 

가방을 다시 흥정했다. 옆집 주인은 우리가 바로 옆집에서 나온 걸 보고 있었다. 처음엔 64달러라고 하더니 내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보이자 그럼 25달러만 

내라고 한다. 내가 다시 손가락 두 개를 흔들어 보이자 자신과 나는 프렌드(친구)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더니 20달러에 주겠다고 한다. 무슨 20달러씩이나 받냐

한국에선 친구인 프렌드에게 그냥 주기도 하는데....
가방을 들고 나오는 이미향 씨 얼굴이 함박웃음이다.
트레킹 도중에 만나는 롯지 등의 조그만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가난한 네팔인들과 포카라 쇼핑거리의 인도인 장사꾼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어제 밤부에선 

모자를 하나 사면서도 달라는대로 6달러를 다 줬지만 여기에선 20달러만 줘도 충분하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쇼핑을 마치고는 포카라의 상그릴라 호텔에 들었다. 카트만두의 상그릴라보다 시설과 규모면에서 월등하게 크고 좋다. 객실에 작은 냉장고 하나 없고 아직도 

배불뚝이 TV가 있지만 9일간이나 걷다가 온 주제에 그런 거 트집 잡으면 안 된다.
방을 배정받고는 우선 밥부터 먹었다. 닭고기 두 점과 과일만 세 번이나 가져다 먹었다. 하나 같이 과일이 맛이 없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잘 넘어갔다

그리고는 11일 만에 땀에 절고 전 몸을 씻고 마지막 지퍼백에 아껴뒀던 내의를 꺼내 입었다. 이제야 몸에서 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네팔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지난 10일간의 여정이 하나하나 사진처럼 떠오른다. 내가 다시 히말라야에 오진 못할 것이다. 아니, 오지 않기로 했다. 내가 사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는 히말라야에서 쓰러질 거라는 느낌을 이번 트레킹 중 몇 번이나 받았고 내게도 불행하고 남에게 폐가 되는 사고를 

만들어선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이번 트레킹은, 아니 사진촬영은 내게 그렇게 힘들었다. 절대 다시 히말라야에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히말라야와 이별한 시간이 되었다.
지난 열흘간 내게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주신 ‘2011 안나푸르나동기들
안나푸르나를 기억하는 동안 우린 서로를 잊지 않을 것이다.
내게 나누어주던 청포도사탕처럼 새콤달콤한 그 마음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모두 건강하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시길 빈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11일차-1013/포카라-카트만두-인천
Pokhara-Kathmandu-Inchon


예티항공의 승무원
일찌감치 일어나 짐을 싸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포카라 공항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이젠 홀가분해서일까 이야기에도 여유가 넘친다. 우리가 카트만두까지 

타고 가는 예티항공의 객실담당 승무원이 예뻐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이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럴 게 아니라 이 비행기를 타고 아예 한국까지 가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비행기가 작아서 가다가 연료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그러면 예쁜 

승무원과 함께 무인도에 불시착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우리들의 그런 염원과는 아랑곳없이 카트만두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모두 그 예쁜 승무원에게 모두 쫓겨났다.
버스에서 내가 스님, 저는 이제 히말라야를 절대 안 오려고 했는데 예티항공의 승무원이 너무 예뻐서 다시 오려고 합니다했더니 스님은 웃기만 하는데 옆에 

앉아있던 차화정 씨가 대신 답변을 한다.
그건 작가 선생님이 남자로서 아주 건강하시다는 걸 의미합니다.”
글쎄,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예쁜 여자는 말도 예쁘게 한다니까. 내가 이런 동기들과 열흘간이나 여행을 했다는 게 행복하다. 집에 돌아가면 차화정 씨의 

사진을 제일 예쁘게 만들어야겠다.

09:50분에 타멜거리에서 가까운 한국식당 빌라 에베레스트에 도착해서는 점심때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진 후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삼겹살과 맥주 그리고 맛있는 된장국이 나왔다. 오랜만에 많이 먹었다.

라나, 당신도 잘 있어요
점심식사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 공항을 향했다. 버스 안에서 라나는 마지막 인사를 하며 동기들의 요청에 따라 레쌈 삐리리를 불렀다.

레쌈 삐리리 레쌈 삐리리 우레라 자우끼 다라마 번쟝 레쌈 삐리리
레쌈 삐리리 레쌈 삐리리 걸어서 갈까 날아서 갈까 레쌈 삐리리 ...

마지막 소절을 라나는 우리말로 바꾸어 불렀다. ‘걸어서 갈까 날아서 갈까 레쌈 삐리리 ...’ 지난 해 시월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처음 이 노래를 

들을 때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났다. 이 노래가 슬픈 노래인지 기쁜 노래인지도 모르면서.

늘 이렇게 트레킹 손님들을 보내고 내일은 다시 새로운 트레커들을 만나 히말라야를 안내하는 일을 반복할 텐데, 그래서 작별하는 순간이라 해도 어쩌면 별 

감정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 안녕히 가십시오하는 그의 말이 떨리고 젖어 있었다. 다부진 체격과 날카로운 눈매, 야생의 포식자와 같은 그의 

강인한 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간이었다.

라나, 당신도 잘 있어요. 히말라야 최고의 가이드가 되어 늘 멋진 삶을 살길 바래요.’

우리가 탄 대한항공 KE696편은 13:50분 트리부반 공항을 이륙해 인천을 향했다.

 

후기
많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람들이 안나푸르나 히말라야를 찾는다. 먹고 자고 씻고 화장실 가는 일조차 불편한데도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 기를 쓰고 

거기에 간다. 우리처럼 푼힐까지 거치려면 최소한 6일 동안은 계속 걸어야 ABC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리고 다시 3일간 계속 걸어야 하산할 수가 있다

그 폭염 속에 야크도 다니지 못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길고 긴 급경사 고갯길을 수도 없이 넘고 넘으며 ABC에 간다. 그렇게 고생해서 간다고 모두가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와 히운출리와 마차푸차레를 보고 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비바람 속에 앞사람의 뒤꿈치만 보고 걷다가 내려가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때로는 

산사태나 눈사태로 ABC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이번의 우리처럼 운이 좋다면 그런 고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거기에 갈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땅, 세상의 지붕, 세상의 꼭대기 등등으로 표현되는 히말라야의 하얀 거봉들과 마주할 수 있다면 그 앞에 설 수가 있다면 수 없이 넘고 넘은 

고갯길 쯤은 가볍게 오르고 넘을 수가 있다.

이런 생각도 했다. 걸으면서도 쉬면서도 심지어는 자다가도 일어나 촬영을 하면서도 너무나 지쳐 내가 사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는 

히말라야에서 죽거나 사고를 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몇 번이나 받았다. 극심한 체력소모에 내 심장의 쿵쿵 소리가 들리고 

폐는 터질 듯 부풀어 호흡을 해도 여전히 숨이 찼다. 사진촬영을 위해 스스로의 몸을 그렇게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가는 게 두려워졌다. 그래서 이제 다시는 

히말라야에 오지 말아야지 했다. 몇 번이나 그랬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후 히말라야에서 촬영한 사진을 작업하면서 여명에 붉게 물들어 아침을 맞이하는 다울라기리의 자태를 보면서, 마차푸차레 정상을 향해 

피어오르는 꿈결 같은 운해의 흐름을 보면서 그리고 타다파니에서 촘롱에 도착하기 전의 상그릴라라고 생각하며 셔터를 누르던 풍경들을 다시 보면서 

이런 풍경 앞에서 다시 셔터를 누를 수 있다면 몸이 좀 망가져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히말라야에 갈지 안 갈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상사병엔 약도 없다는데 히말라야 보고 싶어 또 상사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나...


나를 다시 히말라야에 보내 준 이군이 고맙다. 쿰부 트레킹 때 내 걱정으로 체중까지 줄었다면서도 다시 안나푸르나에 보내주고 제주공항에 돌아온 내게 

꽃다발을 안겨 준 마음이 진정으로 고맙다.


안나푸르나에서 돌아온 지 5일이 지난 1019, 안나푸르나에서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열흘이 넘는 수색에도 

세 사람을 찾지 못했다. 113일 산악인장으로 세 사람의 합동영결식을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너무나 안타깝다. 세 분의 영혼이 안나푸르나에 안겨 편히 

쉬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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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인데도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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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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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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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의 아가씨는 한국말을 제법 잘했다.

나보고 오빠라고 하길래 나이든 남자에겐 아저씨라고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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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첩첩산중에 이런 논이 있고 벼가 익어가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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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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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이군이 꽃다발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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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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