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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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9일 안나프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만난 마차푸차레
**지난 4월 쿰부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히말라야 상사병에 걸려 6개월 만에 다시 안나푸르나를 찾아갔다.
안나푸르나 히말라야 (Annapurna Himalaya)
2011.10.03.-10.13
다시 히말라야로
늦은 가을-, 밭엔 늦더위를 이겨내며 자란 무가 한 뼘도 넘게 푸른 목을 빼고 있고,
노랗게 물든 콩밭엔 속살을 반쯤이나 내밀고 고개를 숙인 수수가 듬성듬성 서 있었다. 스산한 바람 부는 저녁 무렵 산그림자가 길게 누운 초당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수로를 따라 가노라면 이미 추수가 끝난 논둑엔 억새가 흰 머리칼을 가을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짙푸른 하늘 눈부신 저녁햇살까지도 알지 못할 슬픔과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젊은 시절 그 힘겹게 살던 때도 늦은 가을이 되면 불현듯 혼자 집을 나서곤 했다.
그런 가을병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40여 년 근무하던 직장에서 퇴임한 6년 전, 그해 가을엔 혼자 제주에서 완도를 거쳐 화진포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잃어버린 젊은 날의 안타까운 낭만이 거기 가면 있을 줄 알았다. 그 후에도 여서도로 모도로 가을만 되면 집을 나서 길을 떠나곤 했다.
역마살-, 내 몸엔 내 핏줄 속엔 한 곳에 붙박이처럼 안주하는 농경민족의 그것과는 다른 역마살이 낀 바람 같은 유전인자가 들어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제 감상에
젖을 나이가 지난 지 오래인데도 가을이 되면 여전히 길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또 가을이 되었다.
초당 저수지를 흐르던 스산한 바람이 그리워서, 지난 4월 칼라파타르 정상에서 만난 히말라야의 바람이 그리워서 다시 배낭을 챙긴다. 그리고 내 유전인자가
이끄는 대로 집을 나서 길을 떠나려 한다.
집을 나서며
지난 밤 수면제를 먹지 않고 자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할 수 없이 졸리트 한 알을 먹고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이젠 떠나야 한다. 간헐적으로 오한이 오다가 식은땀이 흘러 후줄근하기도 하지만 문제가 안 된다. 거실에서 술 한 잔 따라놓고 신령님께 신고를 드렸다.
지난 26년간의 한라산에서처럼 히말라야에서도 돌봐 주십사고 빌었다. 진정으로 그렇게 빌었다. 낙오하거나 사고로 다치지 않고 촬영하고 싶은 사진 맘껏 촬영하고
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 프로는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왔다. 내가 시간에 신경 쓸까봐 그럴 것이다. 16GB CF카드 두 개를 내밀며 좋은 사진 많이 담아오라고 한다. 그리고는 카고백과
배낭 등을 차에 실었다. 걱정하는 이군에게 임 프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번엔 더 힘든 쿰부 히말라야도 다녀오셨고 한라산을 350번이나 오르셨는데 그거
간단한 거 아닙니다’며 안심시키려 애쓴다. 임 프로는 내 짐과 나를 공항까지 태워다줬다. 짐이 크고 많아 걱정이었는데 고마운 일이다. 예약한 항공사에 짐을 부치니
당연히 규정 무게를 훌쩍 넘는다. 그래도 돈 더 내라고 하진 않고 다음부터는 좀 더 적게 담으라고 한다.
이군의 ‘지시대로’ 공항약국에서 우루사 20알을 샀다. 10,000원. 제대로 먹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이군 걱정이 덜어진다니 그대로 했다.
09:10분 비행기에 탑승-. 연무에 가린 한라산은 멀리 실루엣으로 나를 배웅한다.
신령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약간의 현기증이 일어난다. 괜찮겠지... 괜찮겠지... 지난 몇 주간 심한 몸살로 체중이 3kg이나 줄었고 출발 전날인 어제까지도 병원 신세를 졌는데
히말라야에 가서 무난히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쩌랴. 가야지. 히말라야의 하얀 설산이 눈에 선한데.... 셔터소리가 귀에 쨍한데...
인천에 사는 동생 집에서 저녁을 먹고 1박했다.
1일차-2011년 10월 3일
네팔로 날아가며
05:40분 동생 차에 동승해서 인천공항으로 달렸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06:25분 공항에 도착해서 혜초 박종희 대리로부터 여권과 항공권 그리고 내가 부탁한
Rooming list를 받았다. Rooming List는 이번 트레킹에 동행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파악해서 트레킹 중 촬영한 사진으로 슬라이드쇼를 편집할 때 참고로 하기 위해 미리
전화로 부탁했다.
카고백을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하고는 물 두 병을 사서 한 병은 수통에 담고 한 병은 배낭에 넣었다. 카트만두의 호텔에 있는 물이 어쩐지 입에 안 맞아 내일 네팔에서
우리 조리팀을 만날 때까지 먹을 물이다.
탑승 시간을 기다리다가 오늘 EBC를 15일 일정으로 떠나는 팀을 만났다. 모두 8명이란다. 아주 좋다. 인원도 적당하고 고쿄리와 촐라패스를 제외했다니 일정도 아주 여
유가 있다. 루크라-고쿄-촐라패스-칼라파타르를 15일로 다녀온 지난 4월의 트레킹 일정은 나는 물론 초보자 동기들 대부분에게도 사실 무리였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혜초에서도 처음부터 히말라야 트레킹 경험자만 받겠다고 했다. 이군은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지 몇 번이나 전화를 한다. 힘들면 얼른 포기하고 쉬셔야 해요, 넘어져서
다치지 마세요, 입맛 없어도 나오는 밥 다 드세요... 참 내, 걱정 말라니까 그러네.
아홉 시가 다 되어 대한항공의 KE695편은 그 산 같이 육중한 몸을 푸른 하늘에 띄웠다. 이제 정말 떠나는 거다. 공해의 도가니 카트만두는 싫지만 히말라야의 설산은
벌써 눈에 선하다. 그래, 걱정하지 말자. 예전에 감기 몸살로 온몸이 불덩이 같을 때도 판피린 몇 병 배낭에 넣고 겨울 한라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산에서 3일간
약 한 병 안 먹었는데도 감기 몸살 저절로 다 나았고 사진도 원 없이 찍었다.
예쁜 승무원이 주는 대로 주스도 마시고 땅콩도 받아 다 먹었다. 그런데 객실 온도가 너무 낮다. 좀 추울 정도다. 아니, 객실 온도가 낮은 게 아니라 내 몸이 시원찮으니
그럴 것이다. 항공사에서 주는 모포로 무릎을 덮었다. 그러나 머리부터 차가워서 목에 두른 버프를 두건처럼 머리에 썼고 그래도 여의치 않아 할 수 없이 배낭을 내려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다른 두터운 버프를 꺼내 목을 감쌌다. 그러고도 모자라 은행 털 때 쓰는 가면모자까지 쓰고 나니 좀 따뜻하다. 내가 이런 몸으로 히말라야에
가고 있다니, 히말라야가 어디 동네 뒷산인가.
우리 시간으로 10시 경 비빔밥이 나와서 먹었는데 어쩐지 예전 맛이 아니다. 기내에서 주는 비빔밥은 늘 맛이 있었는데 오늘은 밥도 엉성하고 고추장도 매콤하지도
않고 나물도 맛이 없다. 이것도 내 몸이 아프니 입맛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그럼 그럼 세계 최고의 한국 비빔밥 맛이 엉성할 리가 없다.
세 명이 앉는 좌석의 가운데 앉은 내 좌측은 부산이 집이고 충북 중앙경찰학교의 교관인 권정회 숙녀, 그리고 우측은 순천이 집이라는 박찬호 씨다. 우린 무료한 시간
이야기꽃을 피우며 네팔로 날아갔다. 경찰이 누구인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공무원 아닌가. 몸이 시원찮은 내게 이런 원군이 또 있을까. 난 든든한
이 여경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내 건강도 촬영장비도 이젠 절대 안심이다.
카트만두 도착 40분 전 쯤부터 비행기 창을 통해 히말라야를 촬영했으나 구름과 연무로 선명하진 않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우린 히말라야의 바로 앞까지 다가갈 것이니까.
다시 만난 카트만두
12:22분 카트만두(Kathmandu)의 트리부반(Tribhuvan) 공항에 도착했다. 카트만두는 생각보다 후텁지근했다. 아마 아직도 우기의 영향이 남아서 그런 모양이다.
모두들 지정해 준 전용버스를 타니 앞으로 트레킹을 도와줄 스태프(Staff)들이 올라와 우리 모두에게 예쁜 꽃목걸이를 걸어줬다. 이어서 이번 트레킹의 메인가이드인
라나(Pitam bar Rana)의 인사말이 있었다. 라나는 날카로운 눈매와 다부진 체격을 가진 건장한 남자다. 한국말은 약간 서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일을 잘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버스는 시내를 달려 동양에서 단일로는 가장 큰 불탑이 있는 티벳불교사원인 보우드넛(Boudhnath=Bodhnath) 부근에 우리를 내려줬다. 보우드넛은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다. 탑의 기단의 길이가 100미터이고 스투파의 높이가 38미터에 이른단다. 이슬의 탑이라는 뜻의 보우드넛의 정확한 건축연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보우드넛 사원과 소녀시대
난 이런 유서 깊은 곳에 가도 도무지 유적 그 자체엔 흥미가 없다. 유적보다는 지금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늘 내 관심거리고 촬영대상이 된다. 전에 박타푸르에
가서도 난 거의 사람만 찍었다.
비행기에서 이웃이 된 숙녀와 보우드넛을 한 바퀴 돌면서 여러 사람들을 촬영했다. 붉은 장삼을 입은 스님도 촬영하고 기념품을 파는 가게 주인도 촬영했다. 사원
계단에 몰려 앉아있는 아이들도 촬영하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낮잠 자는 검은 개 두 마리도 촬영했다. 미리 이야기하지만 네팔의 개는 정말 개 팔자 상팔자다.
개나 소를 잡아먹지 않는 네팔에선 개만 보면 된장 바를 생각만 하는 나 같은 사람이 없으니 이놈들이 간이 커져서 도무지 사람을 좀 어렵게 생각하지도 않고 아무데서나
낮잠이나 자고 그런다. 트레킹 도중에 만난 여러 검둥이 개들도 한 번 짖는 걸 못 봤다. 이놈들이 개의 본분인 도둑 지키기를 제대로 하는지 의심스럽다. 하긴 한 번
오르고 내리기도 힘든 산과 계곡에 뭔 도둑이 있겠나 싶기도 하다만.
우린 보우드넛 안으로 들어가서 기단의 위로 걸었는데 거기서 십 대 소녀 넷을 만났다. 내가 저 녀석들을 담고 싶다고 했더니 동행한 권정희 씨가 소녀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고 난 미리 양해를 구하고 셔터를 눌렀다. 그랬더니 이 소녀들은 소위 K-팝 팬들이어서 소녀시대니 카라니 뭔뭔 노래 등을 말하며 직접 노래까지 하는데
난 한국인이면서도 녀석들이 뭔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외국에선 그렇게 유명하다는데도 난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있었으면 소녀시대의 ‘Love Melody'를
네팔소녀한테서 배울 뻔했다.
네팔의 밥
저녁때가 되어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사회 각 층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 중에 특이하게도 석우(조명순) 성수(김은숙) 두 분의 비구니가
우리들과 동행하기로 한 게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스님들은 표정이 밝고 온화해서 내 마음도 평안했다. 그리고 7순의 장인을 모시고 온 멋진 사위도 있었다.
7순에 어떻게 히말라야를 걸으실까 걱정 안 해도 된다. 이미 세상 곳곳 안 가본 데가 없고 보스턴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딸 잘 키워 근사한
사윗감 고르면 이렇게 7순에도 히말라야를 만날 수가 있다. 혜초에서 동행하는 인솔자를 제외하면 트레커는 모두 17명, 그중 남자가 8명 여자가 9명이다. 여자들 중
셋은 부부동반이고 스님 두 분을 포함한 나머지 여섯은 모두 혈혈단신 혼자 왔다.
가이드 라나는 네팔의 전통음식인 작은 만두 모모(Momo)를 소개하면서 네팔 사람들은 ‘카트만두’를 먹지 않고 ‘모모만두’를 먹는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우리 만두보다
크기가 더 작은데 맛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은 우리 만두보다 못하다. 아니, 못한 게 아니라 내 입에 안 맞는다.
6개월 전인 지난 4월 쿰부 트레킹 때도 이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지만 다른 것보다 우선 밥이 맛이 없어 난 반도 넘게 남겼다. 왜 이렇게 밥이 맛이 없냐며 쿰부에
갔을 때 가이드인 니마에게 물어보니 여기선 밥을 이렇게 짓는단다. 쌀을 씻어 솥에 넣고 물을 많이 부어 끓이다가 밥이 끓으면 밥물을 모두 따라낸 후 다시 맹물을 붓고
끓여 밥을 짓는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찰기가 없는 쌀인데 밥물을 다 따라내 버리고 다시 맹물을 부어 밥을 지으니 밥이 모래알 같이 맛이 없을 수밖에 없다. 우리 쌀로
지은 밥은 반찬 없이 맹물에 말아먹어도 난 맛있게 잘 먹는데. 네팔 사람들은 그렇게 밥을 지어야 모래알처럼 밥이 손에 붙지도 않고 먹기가 좋단다.
식사를 마친 후 상그릴라 호텔에 들었는데 내부수리를 했는지 지난 4월 때보다 더 밝고 깨끗하다.
광명시에 사는 건축가인 하경수 씨와 룸메이트가 되어 한 방에 들었다.
하늘에서 보는 히말라야는 늘 신비롭다.
다시 찾은 카트만두
티벳 불교 4대 성지인 보우드넛
가게 주인 두 분의 사진은 출력해서 다음에 랑탕에 갈 때 전해줬다.
세상 어디를 가나 여자는 예뻐지고 싶어한다.
뒤엉킨 전깃줄이 현재의 네팔 정치 상황을 연상케 한다.
거리 풍경
타멜 거리는 여전히 복잡하고 흔란스럽지만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