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부 히말라야-10/칼라파타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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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또 언제나 외로웠다.
떠돌이별 처럼 많은 길을 흘러 다녔다.
그러나 항상 따뜻한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별자리들처럼
나를 우주의 끝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10일차-4월 09일/로부체-고락셉-칼라파타르-고락셉
풍경 그리고 움직이는 점
마침내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다. 70-200미리 렌즈를 어떻게 할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 결국은 휴대하기로 했다. 여길 언제 또 올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서다. 불과 700그램밖에 안 되는 F4 렌즈 하나 때문에 이렇게 고심을 하다니,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어제 누구보다도 많이 걸은 내겐 이 무게도
두렵다. 오늘의 일정을 위해 지난밤엔 별 촬영도 포기했다. 그런데 간밤에 또 눈이 왔다. 코가 맵도록 차가운 날씨다.
방 안의 창문엔 두텁게 서리가 얼어붙었다. 트레킹 시작 후 한 번도 머리를 안 감았으니 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 악어가 사는지
코끼리가 사는지도 모르겠다.
06;30분 무거운 몸으로 출발했다. 로부체에서 고락셉으로 가는 길은 계속 쿰부빙하의 모레인 지대로 나있다. 자연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풀 한 포기 없는 이렇게 황량한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너덜지대와 같은 길을 계속 걸어 올라간다. 하얀 설산을 향해 걸어가는 일행들의 모습이 한 폭의 멋진 그림 같다.
일행들은 자신들이 이미 히말라야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하나의 움직이는 점 움직이는 풍경의 일부임을 알고 있을까.
아카시아꽃 향기
고락셉을 앞에 둔 마지막 고개에선 가슴이 터질듯하고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일행들은 이미 칼라파타르에 붙어 오르기 시작했다.
너무나 힘들어 칼라파타르는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다 했다.
갑자기 메뚜기 떼가 새카맣게 몰려와서 앞을 가려 포기했다고 할까, 예쁜 여자 수십 명이 나타나서 길을 막아 할 수 없이 포기했다고 할까....
출발 세 시간 만인 09;20분, 해발 5,140미터인 고락셉에 도착했다. 잠시 쉬고는 푸모리가 배경으로 버티고 있는 칼라파타르에 오르기 시작했다.
앞서간 일행들은 이미 보이지도 않는다.
조금만 올랐는데도 숨이 차고 가슴이 터질 듯하다. 5,200미터 5,300미터의 고도가 간단하지 않다. 이런 고도에서 내 몸의 내부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오른 편에 눕체와 그 뒤로 에베레스트가 까만 고개를 내밀고 있고 푸모리의 오른 편엔 나를 여기에 오게 한 미끄럼틀 같이 생긴 링트렌이
하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에베레스트는 1941년 에베레스트의 높이를 정확하게 측량한 인도 측량국 초대 장관이었던 영국의 조지 에베레스트경의 이름을 딴 것인데 네팔 사람들은
사가르마타(Sagarmatha) 또 티벳사람들은 초모랑마(Chomolangma)라고 부른다.
날씨가 흐려지고 있어 숨이 차면서도 연신 셔터를 눌렀다.
지금 안 찍으면 영원히 찍지 못한다...
안 찍으면 집에 가서 두고두고 평생 후회할 것이다...
갈증이 나는데도 수통의 물이 너무나 차서 마실 수가 없다. 내가 정말 칼라파타르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까. 체력이 거의 소진되어 정신이 아득한데 일행 중
이미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분들을 만났다.
박세범 씨와 주근호 씨-. 두 분은 나를 보자마자 우선 보온수통을 건네주며 따뜻한 물을 마시게 했다. 얼마나 갈증이 심했는지 쏟아 붓듯이 물을 마셨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두 분은 물이 든 다른 보온수통과 사탕까지 건네며 잘 다녀오라며 격려했다. 따뜻한 물을 그렇게 마시고 나니 정신이 나고
기운이 솟는 것 같다. 조금 더 올라가다가 이번엔 박 대장을 만났다. 혼자 올라가는 나를 보더니 배낭이 필요 없으면 가지고 내려 갈 테니 달라고 한다.
보온 자켓이 들어있어 사양을 했지만 그런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칼라파타르에 오르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맑던 하늘이 차차 흐려지더니 마침내 눈보라 치는 날씨가 되었다. 두터운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얼었다.
다리가 잘 움직이질 않는다. 어제 체력을 너무 소모해서 그럴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미 고락셉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 체력이 거의 바닥임을 알고 있었다.
내 몸에 대한 이런 느낌은 지난 25년간 340여 회 한라산을 오르며 수도 없이 겪었다.
이젠 걷는 게 아니라 발 하나하나를 끌어 옮기고 있다. 푸모리에서 칼라파타르를 거쳐 정면으로 후려치는 눈보라가 고개를 들지도 못하게 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카메라를 앞 색에 넣었다.
머리가 텅 비었다.
눈보라 속에 정상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어떻게 하나...
한라산에 엄청난 폭설이 내리는 밤 혼자 정상을 향해 걸었다. 체력이 소진되어 다리가 움직이지 않자 이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긴 적이 있다.
그래,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땐 팔을 움직이면 돼. 팔을 앞뒤로 움직이면 다리가 따라 움직이잖아. 그러면서 결국 서북벽을 거쳐 정상에 오른 적이 있었다.
히말라야의 거센 눈보라 속에 아카시아꽃 향기가 실려 왔다...
찬바람 때문인지 갑작이 눈물이 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암석으로 된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눈앞이 칼라파타르 정상이다.
칼라파타르
2011년 4월 9일 12시 20분, 마침내 칼라파타르 정상에 도착했다. 내 손목의 고도계로 해발고도 5,555미터 기압은 520hPa.
마침내 칼라파타르 정상에 섰구나...
내가 앞으로 다시 여기에 서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 서는 건 평생 지금 이 순간뿐이다!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무거운 배낭을 메고 종일 무거운 카메라 목에 걸고 걸으며 사진 찍으며 여기에 온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눈보라에 휘날리는 빨강 초록 노랑 파랑 흰색 5색 타르초를 향해 쉬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그래, 히말라야에 오기 전 난 고쿄피크와 여기에서 반드시 타르초를 찍으려고 했다. 바람에 날리는 오색 타르초를 맘껏 찍으려고 했다.
그리고 타르초를 흔드는 바람과 바람 같이 자유로운 내 영혼이 만날 것을 기대했다.
행복하다...
내가 만나는 칼라파타르는 이런 날이어야 했다. 칼라파타르 정상이 봄날 같은 날씨에 사람들로 북적거린다면 그건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상상하던 칼라파타르는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고 하늘은 검은 구름에 무겁게 덮여야 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거기다 눈까지 날려주다니...
몸도 마음도 바람에 날렸다.
아낌없이 날아가게 했다.
타르초를 흔들고 나를 흔든 바람은 한라산으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도 흐를 것이다.
정상에서 만난 예쁜 새가 내게 물었다.
-타르초에 뭐라고 쓰여 있던?
=몰라. 바람에게 물어 봐.
그래, 나도 모른단다. 바람이 타르초를 읽고 갔으니 너도 바람에게 물어 보렴.
눈보라치는 칼라파타르 정상에서 내 인증사진 한 장 찍어줄 사람이 없다 했는데 내 사진을 찍어주려고 빨간 옷을 입은 예쁜 여자가 나타났다.
정말이다. 카트만두의 한국해외협력단(KOIKA)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는 박 모양이다. 처자는 태극기와 네팔국기까지 가지고 와서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신령님은 내 가까이에서 이런 일까지 배려하신다.
조금 있다가는 서울에서 온 모 경영연구원 소장이신 서 모 소장과 가이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서 소장은 내가 고쿄리를 올라갔다가 촐라를 넘어오며
사진을 찍었다며 카메라의 LCD로 보여줬더니 내 사진을 구입해서 연구원에 걸 수 있게 해 달라고 했고 나도 그러자고 했다. 사진 선택은 모두 내게 맡겼고
파일을 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눈보라 치는 칼라파타르 정상에서 사진 팔아먹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13;25분 하산을 시작했다.
오늘 저녁부터는 다이아막스를 복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5,000미터의 고소에 대한 적응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녁식사 후 박대장의 말을 들어보니 오늘 칼라파타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모두 여섯 명이라고 한다. 내일 일찍 정상에 다녀오라면서 안 다녀오면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일은 하산 출발시간을 한 시간 늦춘다고 했다. 이들이 다음 날 칼라파타르 정상에 다녀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거대한 쿰부 빙하가 계속된다.
고락셉(5,140미터)에 도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