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부 히말라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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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일차-4월 05일/포르체텡가-돌레-마체르마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
난방을 전혀 하지 않는 롯지에서 양말을 신고 내복과 두터운 바지 그리고 오리털 파카를 입고 모자까지 쓰고 슬리핑백 속에 들어가 자려니 트레킹만큼이나
힘들지만 어쩔 수가 없다. 추우니까.
샤워는커녕 벌써 6일째 머리도 감지 못하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티슈로 얼굴을 훔치고 선크림을 바른다. 저녁 때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내고 손발도 대강 훔친다. 그리고 얼굴엔 로션을 발라야 한다. 워낙 건조한 지대여서 금방 거칠어지고 트기 때문이다. 밤에 발치에
두었던 물주머니의 물로 고양이 물세수를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난 그것도 귀찮아서 안 한다. 끌어안고 잤던 수통의 물로 양치질이나 하는 게 고작이다.
‘씻는 일’에 대해서 산사진가 안승일 씨의 말을 좀 빌리기로 한다. 안승일 씨는 그의 사진집 ‘漢拏山’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산에서는 20일쯤 이 안 닦고 세수 안 하고 살 때가 많다. 물이 없는 능선에서 야영하며 생긴 아주 좋은 습관인데, 그 좋은 습관이 몸이 익어 물이 흔한
산장에서도 씻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물 없어 못 씻고 피곤해서 안 씻던 게 습관이 되어 물 많고 피곤하지 않아도 씻지 않는 게 산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제는 씻지 않는 즐거움이 나의 산 생활 중 빼놓을 수 없는 재미중의 하나다. 우리 조상들은-크로마뇽 시대가 아닌-백 년 전쯤에도 일평생
한 번도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나는 가지고 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조선의 역대 임금들이나 왕비, 후궁들이 평생 목욕을 안 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산에서 며칠 그냥 사는 건 훌륭하신 조상님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도 조상님들은 얼마나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기고 깨끗한 정신생활을 했던가. 나도 조상님들처럼 잘 씻지 않으니까 사진은 맑고 깨끗하게 찍어야겠다.‘
위의 글을 읽어보면 죽어라 씻기를 싫어하는 난 확실히 조상님들의 ‘안 씻는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에 앞장서는 건 물론 실천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너무나 잘 되었다. 더 나아가 나도 안승일 씨처럼 양치질까지 안 하면 안 될까... 사슴도 야크도 한라산 노루도 양치질 안 하고 잘만 살던데...
지난밤엔 숙면은 아니지만 잠을 좀 잤다. 수면유도제를 두 배로 먹어도 안 되기에 더 먹지도 않고 포기했는데 오히려 몇 시간을 잤다.
돌레에서
07:48분 출발. 날씨는 쾌청하고 바람도 없어 ‘소풍가기 좋은 날’이다. 이틀간이나 짝사랑했던 탐세르쿠를 뒤로 하며 걸어가는데 가다가 뒤돌아보면
내 뒤에 그냥 서 있다.
10:25분에 돌레에 도착했다. 아직 점심 먹을 시간이 아니지만 마체르마까지 가는 도중에 점심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이른 점심을 먹었다. 시간도 많아
카메라를 들고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와 그 시냇물의 발원지인 뾰족한 산 캬조리(Kyajo Ri 6,186m)를 두 번이나 시냇가에 나가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담으며 예전에 배운 동요가 생각났다.
‘산 높고 물 맑은 우리 마을에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왔어요...’.
루크라에서 팍딩으로 또 남체로 가면서 ‘고향의 봄’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는데 돌레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고향에 가고 싶어 그런 것일까.
캬조리 왼쪽의 산 이름이 뭐냐고 가이드 니마에게 물어보니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여기선 높이가 6,000미터 이상이나 되어야 산 이름이 있지 그 이하는
이름도 없다고 한다. 그저 어느 마을의 앞산이나 뒷산 정도로 불린단다. 백두산이 2,744미터고 내가 25년 동안이나 촬영해 온 남한 최고의 한라산이
1,950미터인데...
물론 늘 그렇듯이 예외는 있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30km 정도로 가까이 있는 카카니(kakani)산은 2,073미터이고 그 초입의 나가르준(Nagarjun)산은
2,096미터이면서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어엿한 이름이 있기도 하다.
네팔엔 높은 산이 얼마나 있을까. 전 세계 8,000미터가 넘는 봉우리 14개 중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캉첸중가, 로체, 마칼루, 다울리기리, 마나슬루,
초오유, 안나푸르나 등 8개가 네팔에 있다. 그리고 7,000~8,000미터의 봉우리만도 무려 127개다. 6,000~7,000미터급의 봉우리는 1,165개나 되니
6,000미터 이상만 1,310개다. 이것도 네팔 정부에서 공식발표한 거니까 '숨어 있는' 봉우리가 얼마나 더 있을 지 알 수가 없다.
일행들이 충분히 쉬고 있을 때 쉬지 않고 계속 촬영을 해서 그런지 돌계단 몇 개만 올라가도 현기증이 난다. 고도 4,000미터가 넘는 곳인데 주위의 풍광에
홀려 몸을 조심하지 않은 탓이다.
똥차
12;30분 마체르마를 향해 출발했다. 역시 오후가 되자 구름이 밀려오고 곧 흐린 날씨가 된다. 차가운 바람도 강하게 불기 시작한다. 두 시간 쯤 걸었는데도
몸이 더워지질 않는다. 버프로 마스크를 했는데도 얼굴이 얼얼하다. 차고 건조한 히말라야에 부는 바람이다.
걸으면서 끝없는 상념에 잠긴다. 며칠간 일행들과 함께 지내 온 느낌이다.
버스에 탄 사람이 운전기사한테 말했다.
“이 똥차 안 가요?”
“똥 다 태워야 갑니다.”
가이드 셀퍼 요리사 키친보이 그리고 포터와 야크 이들이 있어서 내가 히말라야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이 있어서 내가 히말라야를 보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우리 덕분에 이들이 먹고 산다는 생각으로 함부로 대해선 안 될 일이다. 등산가나 트레커가 있기 전부터 이들은 여기서 살아왔다. 이들은 우리가
없어도 살지만 우린 이들이 없으면 에베레스트도 못 오르고 트레킹도 못한다. 텐징이 없으면 힐러리도 없다. 존중 받으려면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똥이 되지 않는다.
고통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걷기가 너무 힘들다. 바람에 실린 눈발이 얼굴을 때린다. 오후 3시 무렵엔 말 그대로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상태가
되었다. 돌레에서 무리한 사진촬영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내가 만든 결과다.
마체르마가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언덕배기에선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한라산에서 몇 번 탈진해 쓰러진 적은 있었지만 그때도 갑자기 쓰러졌지
이렇게 힘들진 않았다.
15;30분 마체르마에 도착했다. 솔라전기를 쓰는 마체르마도 전기 사정은 마찬가지다. 며칠간 날씨가 나빠 충전을 못했다는데 방안의 전등은 호롱불 보다도
못해서 카고백의 물건을 찾지도 못할 정도다.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려면 1시간에 600루피 약 5달러다. 마침내 내가 가져온 4FM 배터리 두 개를
연결해 12볼트로 만든 후 내 충전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몹시 피곤하다.
* 이날 탈진할 정도로 힘들게 촬영한 거의 모든 사진이 손실되었다. 집에 온 후 그 동안 사용했던 두 개의 카드와 외부 저장장치를 여러 종류의
복구 프로그램으로 복구해봤으나 단 한 점의 사진도 나타나지 않았다. 왜 이 날짜의 사진만 사라졌는지 원인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원인을 알게 되었다. 내가 촬영한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 히말라야 신령님이 가져 가셨단다.... 에구구, 쫌 남겨두시지 않고요~~~!!
(오늘 여기에 올린 사진들은 박 대장의 카드에서 받은 것들이다.)
포르체텡가를 출발 마체르마를 향한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보조가이드 깐차. 아주 다부진 사람이다.
돌레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도 또 담았다.
계곡을 흐르는 물가까지 오르내리며...
피곤해 죽겠는데 사진은 무슨...
박대장이 찍어줬다.
사진 찍는 사람은 자기 사진이 없다면서 수시로 찍어줬다.
걷고 또 걷는다.
쩌어~~~기 마체르마가 보인다.
우리가 먹을 식료품을 나르는 이 포터는 슬리퍼에 양말도 없는 맨발이다.
가족을 굶기지 않기 위해 일하는 사람의 모습보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