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기록산행 500회의 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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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0일 500회째 한라산 산행을 했다. 살면서 무슨 일에 소위 꺾어지는 숫자를 맞추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500회 산행 때는 뭔가 평소와 다른 감회가 밀려왔다.
내가 500회 째 산행한다고 한라산에 쌍무지개가 뜨고 7선녀가 내려오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기록산행 500회
한라산을 오르며 사진을 찍어온 지 이제 33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산행을 할 때마다 기록한 산행일기는 950여 쪽이나 되었고
사진도 찍을 만큼 찍었다는 생각에 아쉽거나 후회스런 일은 없다. 직장인인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다.
산행일기는 내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서 썼다.
어리목코스로 산행할 때는 해발 1,600미터인 만세동산 이상 올라갔을 때 썼고 영실코스로는 해발 1,700미터인 선작지왓 이상 올랐을 때
그리고 몇 번 안 되지만 성판악코스로는 진달래밭 이상 갔을 때만 썼다. 미기록산행까지 포함하면 600회 쯤 되지 않을까 싶지만 명색이
사진을 한다면 사진으로 말을 해야지 산행을 몇 번 했느냐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사진과 건강
몸이 약해 ‘국민학교’ 6년을 다니면서 가을 운동회를 한 번 밖에 참가하지 못했다. 동무들이 운동회 연습을 할 때도 난 교실에 앉아 있었고
아침 조회 때에도 운동장에 서 있지 못했다. 조금만 세워 놓아도 그냥 픽 쓰러지는 약골이었다.
제주에 오던 해에도 키 171cm에 체중 53kg 허리둘레 28인치인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던 내가 한라산을 오르면서 차츰
건강해지더니 나이 60을 훌쩍 넘은 나이에는 히말라야를 세 번이나 트레킹했고 70살이 되어서는 알프스 3대 미봉을 트레킹하면서 8,000컷의
사진을 찍어오기도 했다. 지난 해 10월 2년마다 받는 종합검진에서는 단 하나 체중이 1kg 넘어서 B-정상이었고 모든 항목에서 A-정상
판정을 받았다. 난 한라산에서 사진과 건강을 얻었다.
-동행
산행 500회 때 어디로 갈까 생각했다. 당연히 정상에 올라야지 하면서도 만약 그날 영실코스나 어리목코스에서 더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면 그래도 정상에 올라야 할까. 이제까지 찍어온 한라산사진에 관계없이 반드시 정상에 올라가서 기념사진 하나 찍어야 할까.
그럴 수는 없다. 500회라는 숫자에 맞춰 산행한 게 아니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기 위해 산행을 했는데 500회째에는 왜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촬영조건에 맞춰 산행할 것이고 그것이 정상이든지 아니면 만세동산이나 선작지왓이든지 거기서 사진을 찍으며
산행 500회의 의미를 새겨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다행히 그날 온화하고 맑은 날씨여서 거리낌 없이 성판악을 타고 정상에 올랐다.
동기동창을 비롯 몇몇 지인들이 500회째는 동행하기를 청해왔으나 모두 사양하고 이제까지 내 사진의 변함없는 팬이고 절대적 후원자인
이군과 둘이서만 동릉정상에 올랐다.
-신령님
산행하면서 당연히 크고 작은 위험과 사고가 있었다.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고, 돌매화 찍다가 암벽에서 뒤로 떨어지기도 했고,
병풍바위 함정 같은 곳에서 추락하면서 바위에 부딪친 종아리 혈관이 파열되어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빙판이 된 1100도로에서 차가 빙글빙글 돌다가 앞바퀴가 배수로에 빠지기도 했고 폭설에 영실 상부 주차장에 올라가다가 차가
고장 나 1주일 만에 견인해 오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까지 산행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신령님의 큰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산령님 고맙습니다. 큰 탈 없이 산행을 하고 사진을 찍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이
나이 때문일까. 만 72살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이젠 나도 좀 지친 것 같다. 며칠 전 영실에서 이군이 찍어준 내 사진을 보니 그런 느낌이
진하게 든다.
지칠 만도 하다. 이 나이 되도록 촬영장비 짊어지고 산행을 한다는 게 마음과 달리 몸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엊그제는 차가 이상해서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엔진에서 기름도 새고 타이밍벨트 머플러 브레이크드럼 등을 바꿔야 한다면서 차의
세금가치보다 수리비가 더 든다고 한다. 그래, 16년간 516도로와 1100도로와 일주도로와 산록도로를 그렇게 달렸으니 차도 지쳤을 것이다.
이젠 내 몸도 내 차도 좀 쉬게 하면서 아껴가며 써야겠다. 산행도 이제까지처럼 험한 날 골라 죽을 둥 살 둥 하지 말고 남들처럼 좋은 날
소풍 가듯이 여유 있게 해야겠다.
그래야 수현이와 해원이가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8년 11월 제주 노형동에서
이군과 함께 걷는 밤길, 이제 곧 그리워질 것이다.
일출 3시간 20분 전인 03시 40분 정상에 도착했다.
캄캄한 시간 헤드랜턴을 이용해 담았다.
이런 여명이 늘 좋다.
준비해 온 작은 현수막에 날짜와 내 이름을 썼다.
촌스럽지만 이런 사진도 찍었다.
약골 중의 약골이었던 나
함께 사진을 하는 지인이 축하해 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