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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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일차-1010/안나푸르나 B.C-마차푸차레 B.C-도반-밤부
Annapurna B.C-Machapuchare B.C-Dovan-Bamboo


서기(瑞氣)
밤이 지나고 멀리서 아침이 다가오는 이른 새벽 차츰 붉은빛으로 밝아오는 안나푸르나 1봉을 마주하며 삼각대를 세웠다.

거대한 설산 앞에서 숨이 막혔다. 모레인지대가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빙하지대 변두리의 가장 높은 곳에 삼각대를 세우고 지구의 꼭대기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 큰 산의 장엄하고도 엄숙한 서기(瑞氣)가 내 온몸을 감싸고 흐른다.

이건 단순히 크고 높은 바위산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위엄이다.

리모트콘트롤러를 쥔 손이 떨렸다. 내게 이런 순간은 지금이 생의 단 한 번이고 마지막이다. 앤젤 애덤스는 피사체를 본 느낌의 반을 암실에서 만들어 낸다고 

했지만 내가 집으로 가면 어떻게 무슨 재주로 이 느낌을 사진으로 표현할 것인가.

무의식적으로 미러를 올리고 셔터를 끊는다. 쿰부에서도 탐세루크 외엔 이렇게 큰 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보며 셔터를 누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마음과 눈은 설산에 가있고 손은 따로 카메라를 조작하며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우리 일행이 네팔로 떠나기 2주 전인 지난 919일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내가 마주 보고 있는 바로 이 안나푸르나 남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려고 

출국했는데 이틀 전인 108일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지금 쯤 계획대로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저기 어디 쯤 올라가고 있는지

지난해의 실패를 딛고 이번엔 뜻을 이루기를 빌었다.

안나푸르나 1봉과 바라시카르(Bharaha Shihhar 7,647m), 그리고 안나푸르나 남봉의 꼭대기부터 햇빛이 닿으며 차츰 붉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이어서 서서히 산 아래까지 붉게 물들이더니 마침내 마차푸차레 위로 해가 떠올랐다. 쉬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어제는 밤까지 무리를 해서인지 아니면 

고소 때문인지 몇 걸음만 옮겨도 숨이 차고 현기증이 난다. 다행히 날씨가 더 할 수 없이 내 사진작업을 도와주었다

주위가 밝아질 때까지 사진을 찍고는 롯지로 돌아가 일행 중 가장 꼴찌로 카고백을 꾸렸다.

자유하산
아침 식사 후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는 MBC까지 자유하산이 시작되었다

내려가면서 왼편의 텐트피크(Tent Peak 5,695m)와 싱구출리(Singu Chuli 6,501), 오른편의 히운출리(Hiun Chuli 6,434m), 마차푸차레 왼편의 

간다르와출리(Gandharwa Chuli 6,248m), 그리고 자주 뒤돌아보면서 안나푸르나 1봉과 남봉도 촬영했다

주위의 모든 설산을 촬영하면서 MBC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하산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광을 받는 금빛 초원사이로 하산하는 트레커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어제 운무 속을 걸어오면서 

그렇게도 기대했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금빛 트레일과 하산하는 트레커들을 함께 담고 싶어서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다.
히운출리는 어제는 보이지도 않았고 아침에도 ABC에선 크게 근사하지 않았는데 하산하면서 보니 아주 잘 생긴 산이라는 느낌이다. 찍고 또 찍고 많이 찍었다

이 산을 언제 다시 볼 것인가.
히운출리의 북벽으로는 아직 아무도 정상까지 오른 적이 없는데 2년 전인 2009년 우리나라 충북산악연맹의 직지원정대가 북벽에 직지루트를 뚫기 위해 

오르다가 민준영 대장과 박종성 대원이 실종되는 사고가 나기도 한 산이다

두 분의 영혼이 아름다운 히운출리에서 영면하기를 빌었다.

니라전 그릉
니라전 그릉은 보조가이드 중 한 명의 이름이다. 언제나 우리 일행의 맨 뒤에서 걸으며 낙오자가 없는지 챙기는 임무다. 그러다보니 그는 거의 나하고 많이 

걷게 된다. 내가 사진 몇 컷 찍고 나면 일행들과 떨어지고 그러면 숨을 헐떡이며 따라잡느라 뛰어가다시피 한다. 그때마다 그릉은 사진 찍는 나를 기다려주고 

내가 빨리 걸으면 그도 똑 같이 뛰다시피 한다. 그런 그에게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 그는 노노, 노 프러블럼!’하면서 나를 편안하게 해주곤 했다.
오늘도 MBC까지 자유하산이지만 그는 늘 하던 대로 내 곁에 서서 사진 찍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에게 미안해서 먼저 내려가서 쉬라고 손짓을 했더니 

그도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산했다.

이제 여기를 내려가면 내 평생 여길 다시 오진 않을 것이다. 카메라의 배터리도 충분하고 CF 카드도 충분하다. 더구나 천천히 걷는 하산길이니 숨차고 힘들 것도

없다. 주변엔 찍고 또 찍어도 더 찍고 싶은 아름답고 웅장한 풍경들 그리고 좋은 햇살

카메라의 셔터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산들바람은 달콤하고 하늘은 왜 또 이렇게 푸르고 깊은지....

 

아저씨 저 사진 좀 한 장 찍어주세요~”

한국에서 온 여고 2년생이란다.

같이 온 사람들은 어디 가고 너 혼자 이렇게 다니냐.”

저 혼자 왔는데요.”

“뭐? 짐은 어떡하고.”

짐은 포터가 지고 베이스 캠프로 먼저 올라갔어요.”

단발머리 꼬마 같은 이 녀석에게 금방 존경심이 생겼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여고 2년생이 혼자 안나푸르나에 왔을까

예쁘고 멋진 이 녀석의 거침없는 마음이 부럽고도 부럽다. 나도 좀 이래봤으면...

이젠 찍을 만큼 찍었다고 생각되어 카메라를 벨트팩에 넣고 내려가는데 다시 올라오는 인솔대장인 혜초의 박 대리를 만났다. 웬일로 다시 올라오느냐고 

했더니 일행들이 다 하산한 후 모여서 한 시간을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아 일행들은 가이드를 따라 먼저 내려가고 자기는 혹여 사고라도 난 게 아닌가 

걱정되어 나를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아이고~ 우째 이런 일이.... 시계를 보니 이미 10시가 지나고 있다. ABC에서 8시에 하산을 시작했으니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두 시간 째 하산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너무나 미안해 하니까 박 대리는 자유하산한다는 말만 했지 몇 시까지 MBC에 도착해야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 그럴 거라면서 일행들에게 

연락이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MBC에 도착해서 거기서 다시 그릉을 만나 함께 학다리 걸음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니 얼마나 나를 나무랐을까 싶다. 아무리 도착시간이 

정해지지 않았다 해도 말이다. 또 그릉은 메인 가이드 라나에게 왜 맨 뒤에서 오지 않고 먼저 하산했느냐고 한 소리 듣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참 미안한 일이다.
3,000미터가 넘는 고지에서 이렇게 무리하게 걸으면 내 몸에 어떤 이상이 생긴다는 걸 알지만 그런 걱정보다 일행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니 어쩔 수가 없다

도중에 물을 마시느라 잠깐 두 번 쉬고는 내리 달리다시피 했는데도 1130분이 되어서야 데우랄리에서 쉬고 있는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늦게 온 사람에게 돌멩이를 던질 줄 알았는데 모두들 환하게 박수를 치며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한다. 고맙고 미안하고.... 에구구...

맹물 같은 땀
12:40분에 히말라야롯지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는 14:00시에 출발했다. 오후가 되자 어김없이 구름이 밀려들고 흐린 날씨가 된다.
어제부터 입맛이 없어져 밥을 물에 말아 넘기는 식으로 식사를 한다. 지친 모양이다. 아니면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5리터나 되는 

물은 이제까지 마셔본 적이 없다. 이렇게 물을 많이 마시니 오후엔 땀이 흘러도 땀이 짜지 않고 맹물처럼 싱겁다. 오래 전에 등산하는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땀을 많이 흘리면 몸에서 염분을 조절해서 싱거운 땀이 난다고. 남의 말로만 듣던 그 말을 내 스스로를 통해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 조리팀
가다보니 뒤에서 우리 조리팀이 내려온다. 모두 여섯 명이다. 조리팀은 우리들에게 가장 환영 받는 스태프다. 무거운 카고백을 나르는 포터도 있지만 아무래도 

때때로 밥해주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게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조리팀이 뒤에서 따라 붙으면 모두들 짐 짐~!’하거나 비켜주세요!’하고 소리를 질러서 

그들에게 길을 양보한다. 그리고는 그들이 지나갈 때 모두들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쳐주거나 양쪽에서 스틱을 하늘로 들어 교차해서는 그 아래로 지나가게 한다.

그러면 조리팀은 싱글벙글 웃으며 우리 앞을 지나가는데 이런 멋진 장면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그때마다 기회를 못 잡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게 참 아쉽다.
매일 새벽 우리보다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하고 우리가 밥 먹은 후 숟가락 놓고 나가면 자기들 밥을 먹고, 그릇 다 씻어 바리바리 묶어 우리 뒤를 따라가선 

추월하고, 점심이든 저녁이든 다음 밥 먹을 곳에 먼저 가서 식사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조리팀에게 고마운 마음이 안 들 수가 없다.

15:25분 도반에 도착했다. 날이 잔뜩 흐렸는데 오늘의 최종 목적지까지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며칠 째 땀에 젖은 몸에선 퀴퀴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그런 냄새를 참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마음은 온통 외장하드디스크인 넥스토를 어서 안전하게 제주의 

내 컴퓨터에 접속시키는데 있다. 촬영해 저장한 사진 모두가 이상 없이 카피 저장되어야 안심할 수가 있다.
오늘은 MBC이후 거의 사진을 안 찍었다. 찍을 사진도 없거니와 너무 지쳐서 벨트팩에서 카메라를 꺼내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젯밤부터 별빛사진으로 

또 새벽 여명부터 촬영으로 체력을 많이 소모한데다 MBC에서 일행과 떨어진 거리를 따라잡느라고 무리한 탓이다

무리하면 반드시 이렇게 확실한 결과가 따른다.

밤부(Bamboo)에서
16:45분 오늘의 최종목적지인 해발 2,310미터 밤부에 도착했다. 다행히 오는 동안 비를 맞지 않았다.
오늘 하루에 고도를 1,720미터나 낮추니 기온도 어제의 차가운 ABC와는 딴판이다. 단순계산상으로도 11도나 차이가 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오늘 저녁에도 또 내일 아침에도 촬영할 게 없다. 오늘 촬영한 사진을 넥스토에 옮긴 후 몇 겹으로 포장해서 휴대 배낭에 넣었다

이번 트레킹의 거의 모든 사진이 저장된 것이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오늘 오후 밤부를 향하는 수직에 가까운 돌계단길을 내려오면서 엊그제 이 길을 어떻게 올라갔었나 싶었다. 자칫 몇 번이나 굴러 떨어질 뻔했다

오전에 체력소모가 심해 다리가 풀려 그럴 것이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걸 눈치 챘는지 동기들이 이것저것을 갖다 주며 먹고 힘내라고 한다. 벌써 1주일째나 계속 걷고 있는데 어디 나만 지쳤을까

고마운 마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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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1봉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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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남봉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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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푸차레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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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구출리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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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1봉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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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을 시간이 되었지만 여기서 떠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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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남봉에도 아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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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푸차레에도 아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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